"프리고진 사망" 푸틴의 복수인가…"그때 비행기가 2대..아직 살아있다"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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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그 배후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장 반란에 대한 응징이란 분석인데요. 온라인에선 프리고진 사망이 사실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프리고진이 탑승자 명단에 있었을 뿐 실제 탑승했는지 여부가 의심스럽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한국의 경제는 다르다.

 일본 경제의 메인 뱅크 제도가 부동산 버블을 만들고 붕괴하기까지 얻은 것은 후회요, 잃은 것은 30년의 일본 부동산, 최근 한국 경제침체와 부동산시장 붕괴가 일본을 답습하고 있나?


1. 메인 뱅크 제도는 주거래 은행이 기업과 은행 간의 관계에서 상대의 장기간에 것쳐서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는데 이게 경영자의 과도한 투자나 과소 투자를 하지 않는 안전 장치 역활을 한 것인데 그렇게 하다 보면 경영자가 외부의 적대적인 m&a 라든가 좀 자유로울 수 있는데 장기 계획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큰 역할을 해왔다.

2. 일본의 이런 금융 시스템이 현재 경제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는 거꾸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은행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줬 을때 혁신을 모험자본 쪽에서 나타나는 부분들이 좀 약해지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 받다 보니 안주하려는 현상이 나타났다.

3. 일본경제를 말할 때 1985년 플라자 호텔 회의를 말하곤 한다. 바로 일년전에 실질적으로 일본의 부동산 폭등의 원인에 일본 대장서의 실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문제점은 대장성이 일본은행들의 투금 개정법을 허용해 돈을 맡아서 주식이나 펀드를 운영할 수 있게 기업들에게 할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것이다.

4.  기업들이 미국의 플라자 합의를 하게 된 것도 일본이 일방적으로 무역흑자를 가지고 가다 보니 근본적으로 해결해 보자 시작한 것인데, 기업이 그렇게 해서 번돈들을 기업이 계속해서 내부유부를 가지고 있게 되는데 그 돈을 활용하고 싶었던 것으로,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설비 투자인데, 설비 투자에서 금융투자로 기업이 하고 싶은데 그것을 대장성이 투군 계정을 할 수 있도록 합법화를 했다.

5. 기업이 메인 뱅크로부터 싼 이자 돈을 주식과 펀드 등에 쓸 수 있도록, 왜냐하면 당시에 투신사들이 연8% 이익을 보장을 해줬기 때문에 고생해서 설비투자해 기업경영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해 기업이 설비투자에서 금융 투자로 변화하게 된 것이 버블의 단초이고 플라자 합의까지 이르고 대처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부동산 버블이 급증하게 됐다.

6. 1984년 투금 계정에 기업의 자금이 9조엔 정도였다가 1989년 버블 피크일때 40조엔까ㅏ지 팽창해 4배 정도였는데 이 것은 부동산 버블에 들어간 돈 외의 투금에만 흘러 들어간 금액만 4배에 달했다. 1985년에서 1989년에 지가도 4배가 상승하고 부동산 버블에 돈이 집중, 가격이 폭등을 불러 일본정부의 투금 개정 정책은 실패하게 된다.

7.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수익이 올라 주식값은 상승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장에 일반 서민들이 합세해 뛰어들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개인이 뛰어들었다 한다면 기업과 법인이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 플라자 합의로 금리가 기업의 해외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어,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금리를 일본 은행이 낮췄는데 자금 조달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데 좀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던 것이 금리가 낮은 은행에 돈을 넣지 않고  실물투자, 부동산에 자금이 흘러 가게 됐다.

8. " 일본 국민의 1억 명이 부동산 업자"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동산 버블의 피크 시대를 였으며, 엔고 현상으로 외국 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일본국민들의 과소비 현상으로 거의 모든 제품을 사들였다. 하와이의 외자 투자의 96%가 일본인의 투자였다. 이후 붕괴를 맟게 데는 대는 일본의 정부와 은행의 역할에 처음이 있었다.

9. 엔화 절상으로 힘들어하는 기업들을 위한다고 해서 금리를 인하 하였는데 의도하지 않게 저금리의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자금을 걷어 들리기 위해 일본 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금융긴축 정책을 1년 3개월 동안 2.5%에서 6%까지 급 상승시켰다. 예상 못한 기업이라 든가 자금을 대출받은 개인도 큰 부담을 갖게 되었다.

10. 일본 정부는 또 소비세 3%를 부과를 하다 보니 시장이 급속히 위축이 되고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국제 결제하는 bisa 해외 점포를 가진 은행들의 재무 건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자본율 8%로 미달일 경우 국제거래가 안 되고 은행을 폐쇄하게 된다, 미국은 이미 10%를 은행들이 갖추고 있었으나 일본은행들은 자기자본율이 6%에 있었다

11. 일본은행들은 자기자본율 8%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출을 제한하고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일본 기업이나 가계는 원리금 상환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ltv 도 120%까지 부동산 담보대출이 존재하는 상황에 일본 정부는 ltv를 70%로 제한하고 신규 담보대출도 막고 있었다. 1990년 중반 이때부터 파산, 도산이 시작되었다.

12. 기업과 개인의 부채상환이 어렵게 되어 이것은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때 600조엔을 은행을 살리고자 집어넣었으나 은행이나 증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러한 경제 파산은 일본 국민 정서에 큰 상처로 남아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다, 더이상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고 기업이 살아나야 하는 것이 일본의 특유 정신이다.

13. 일본의 기업과 노동자와의 관계는 해고를 하지 않는 요구와 회사 측의 임금 동결안으로 30년동안 이어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화 봉건제 사회로 그냔 내려왔던 그런 문화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버블 경제를 거치면서 극도로 디플레이션 상황이 됐던 경제 환경이 지금 무기력함을 형성하게 됐다. 또 갈라파고스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14. 한국의 긴 저금리 현상으로 부동산 버블이 시작되고 저출산, 고령화도 일본하고 좀 비슷하고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를 일본도 우려하고 비슷한 현상인 것 같으나 한국과 일본은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하더라도 한국은 부동산 정책이 과격하지 않다 라는 것과 코로나 때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과 가계부체 1,800조에 이르는 리스크 사이의 위험 관리를 현명하게 해왔다는 것이다.

15, 한국의 ltv 관리와 기업과 가계부체 사이의 금리인상이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와 한국은행이 미국의 금리인상이 만들어낸 고 금리 고 환율 방어에 지금까지 현명하게 해온 것 갔고 내년의 미국의 최종 기준금리 5% 포인트 예상과 한국의 4% 포인트 대의 금리 관리와 환율 관리을 정부와 한국은행이 잘 헤나간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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